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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생활 정주행 완료 후기

Enter.|2020. 10. 19. 17:05

2020년 3월부터 5월까지 방영됐던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최근에 케이블에서 재방송해줘서 보고 따로 1회부터 정주행을 완료했습니다.

 

본방 시점에는 임플란트를 대규모로 진행했고, 코로나19 상황에 매출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드라마를 챙겨 볼 여유가 없었는데요. 막상 TVN에서 재방송을 하더라도 처음부터 본 작품이 아니라 그냥 채널을 돌렸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우연히 10회부터 방송되는걸 다시 봤네요.

 

언젠가 꼭 다시 보겠다며 파일 형태로 보관 중이던 전편 물량을 다시 정주행하게된 이유입니다.

 

사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관심을 갖게된건 '잔잔한 휴머니즘'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의 경우 다소 현실적이고, 극단적인 상황 전개에서 재미를 주고 주연 2명으로 하여금 청춘 로맨스도 곁들여서 이야기가 구성되면서 보는 재미를 주는데요. 그에 반해서 슬의생은 1990년대, 2000년대 옛 가요와 친구,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잔잔한 감동과 재미를 주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 어제 E채널에서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1을 전편 방영했는데 서현진과 유연석의 로맨스가 왜 이렇게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던지 슬의생이 40 줄에 접어든 제게는 더 나았습니다.

 

그래서 정주행 후기를 남깁니다.

 

▲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99학번 의과대학 동기 5명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야기는 친구 사이, 환자의 사례,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 등 다양한 부분에서 짧게 그려지고 있는데요. 정주행을 마친 입장에서 이제는 몇 회를 틀더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5명의 주연이 모두 다른 캐릭터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성격으로만 본다면 양석형 캐릭터와 비슷한데요. 5명 중 굳이 한 명의 성격을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김준완의 직선적이고 솔직한 면을 닮고 싶네요.

 

이런 부분에 맞춰서 이야기를 감상하셔도 특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랍니다.

 

▲ 슬의생은 정상적으로 사회에 진입한 의대 학생들이 마흔이 되어 자신의 위치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인간 사이에 관계, 가치 등을 보여주는 휴머니즘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남자 대학생이 사회에 진출하는 타이밍은 27세, 이 안에는 군대 2년도 들어가지요. 하지만 의사는 6년이므로 남학생의 경우 29세에 공보의 완료, 31세에 인턴 완료, 35세에 레지던트 완료 이후 펠로우 생활을 하다가 교수가 되는 설정입니다.

 

그래서 극 중 40세로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한 과의 부교수 혹은 조교수로 등장합니다.

 

이들이 특별한 이유로 율제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 인간의 가치, 감정의 표현 등을 40세의 눈으로 그려낸게 이 작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뜨겁지만 서툰 20대, 결정에 강박을 가져야되는 30대가 아닌 약간은 여유를 갖는 40대의 시작에 있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다보니 보는 맛이 다른 종류의 의학 드라마보다 좀 더 깊다고 생각합니다.

 

※ 개인적으로는 최종화를 몇 번 본 뒤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 영화가 죽을 쑤고 드라마만 흥하는 이유는 결국 글의 위력이다. 이런 작가들이 드라마에 포진했는데 감독이 쓰고 찍는 영화가 어디 감히 문화 컨텐츠라고 명함이나 내밀겠나? 라는 생각을 했었죠.

 

등장인물 정리해봅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대한 스틸컷을 얻으려고 포털에 드라마 제목을 쳤는데 등장인물이 다 나오더군요. 그래서 이미지 대신에 그 내용을 올릴 생각입니다. 주연급 말고 조연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몇 있거든요.

 

 

▲ 장겨울 역의 신현빈씨는 보자마자 '어디서 봤는데?' 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나중에 무사 백동수에서 유지선 역으로 나왔다는걸 기억해냈죠. 분위기는 좋은데 뭔가 어색해서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요. 한 동안 제 눈에는 안 보여서 영화 1편, 드라마 1편을 찍고 잊혀졌나? 생각했었네요.

 

그런데 필모그래피를 보니까 꾸준하게 연기를 하고 있었더군요. 그저 제가 좋아할만한 주제나 분위기의 작품이 아니라 무사 백동수 뒤로는 한번도 못 봤을 뿐이었습니다. 목소리, 이미지, 장겨울 캐릭터 세 가지가 너무 잘 맞아서 이번에 흥한 배우 중 한 명이 아닐까 싶네요.

 

또 김혜숙, 김갑수 님이 연기한 노년의 친구 관계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아빠, 우리 엄마한테도 저런 친구분들이 계셨으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네요.

 

 

▲ 쌍둥이 의대 본과 3학년 실습생으로 나온 윤복과 홍도 중 윤복 역을 맡은 조이현씨는 JTBC 드라마 나의 나라에서 서후의 여동생 서연으로 출연했었기에 바로 기억을 해냈습니다.

 

사실 정주행을 하기 전에 10회부터 봤을때는 거의 마스크로 입을 가린 상태에서 코 위만 보였는데요. 그 때는 조이현씨인지 모르고 '너무 매력적인 분이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나중에 1회부터 정주행을 하니까 '어? 서연이네?' 라고 알아챘죠. 아직 살짝 어색하지만 연기를 할 때 눈만 잘 컨트롤되면 참 좋을것 같은 배우입니다. (가끔 로봇 같은 느낌이 들어요.)

 

조이현씨는 나의 나라를 할 때는 몰랐는데 슬의생에서 보니까 스릴러, 공포물도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득문득 눈빛이 무서웠어요. 눈매 자체가 주는 이미지가 상당히 매력적이라니까요.

 

 

▲ 극 중 조정석 동생으로 나오는 익순 역의 곽선영님이네요. 이름을 오늘 처음 알았는데요. 극 중에서 보여준 캐릭터의 이미지가 정말 좋았습니다. 다른 작품, 다른 배역일때는 느낌이 다르겠지만 볼 때마다 참 기분이 좋아지는 캐릭터였네요. 필모그래피를 보니까 방송보다 연극을 더 오래 하셨네요. 앞으로 기대가 되는 배우 중 한 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건 대부분 눈에 들어온 분들에 대한 것이고요. 주연, 조연 어느 한 부분 삐걱거림 없이 잘 아우러졌던 작품이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이 작품은 사례 2~3개가 교차해서 주인공 5명과 연결되는 형태로 보여지는데요. 그래서 정주행을 한 뒤에 남는 에피소드가 몇 개 있습니다. 그걸 간단히 남겨볼게요.

 

1. 전미도 동창

 

채송화 동창이 입원을해서 수술을 받아야되는 상황이었는데 입원실에 있던 다른 환자들이 모두 할머니들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할머니들이 날 너무 쳐다본다며 불쾌하게 생각했지요. 유방암 수술을 해서 한 쪽 가슴이 없는 사람을 처음 보냐며 쏘아붙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 할머니들이 그 친구에게 한 대사가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너무 예뻐서 봤다고, 젊어서 예쁘다고, 내가 그 나이면 남편이랑 이혼하고 가고 싶은데 다 돌아다닌다고 하면서 송화의 친구를 너무 부러워했던거죠.

 

비슷한 설정이 도깨비에도 나옵니다. 후반부에 삼신 할매가 떡볶이 집을 하는데 손님으로 온 꼬마(중학생)의 마음이 너무 예뻐서 쳐다봤다는 내용이지요. 그 때 느꼈던 감동을 여기서도 느꼈었네요.

 

2. 인생을 포기한 익준의 환자

 

익준이 수술한 환자 중 한 명이 약을 계속 안 먹고 건강을 악화시키는 상황이었습니다. 간을 준 남편이 예전부터 바람을 피우고 있었는데 그게 미안해서 자신에게 간을 준거라며 자책을 하는 환자였죠. 이대로 죽을거라며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를 말리는 익준에게는 '선생님은 좋은 부모 만나서 행복하게, 걱정없이 사니까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강경한 입장이었죠.

 

이에 익준이 밤에 찾아와서 자기도 아내가 바람을 피워서 이혼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실의에 빠졌을때 바람을 피운 아내때문에 시간을 낭비하는게 너무 아까워서 다시 씩씩하게 살고 있다며 환자를 설득하는 내용이지요.

 

3. 최종화에서 산부인과 대기 장면

 

극에서 산부인과 조교수로 나왔던 양석형은 일주일에 3일만 외래 진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큰 병원이라 환자는 많은데 인트라넷 시스템상 10분에 2명씩 예약을 받게 되어있어서 산모들의 대기시간이 몇 시간씩 걸리던 상황이었고 이에 대해서 산모들은 항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료를 받으러 들어간 만삭의 산모가 뱃속에서 아이가 유산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산모는 목 놓아 울기 시작했고 대기하던 환자들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에 전공의 선생님이 컴퓨터가 고장났다고 말이라도 해 놓자는데 양석형 교수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합니다.

 

한편 밖에서 장시간 대기하던 보호자가 이의 제기를 하려고 하자 그때까지 오랜 대기 시간에 화를 냈던 산모가 남편을 붙잡으면서 가만히 앚아있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카메라 앵글은 아이를 유산한 산모의 울음 소리를 배경음으로 깔면서 대기하는 산모들을 비춥니다.

 

자신의 아이는 건강하기를 바라는 환자들을 비춥니다.

 

4. 윤복과 채송화

 

채송화는 전공의 시절에 백선정이라는 환자에게 매달렸으나 끝내 사망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의대 본과 3학년인 장윤복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옆에서 헌신적으로 간호를 한 의사 선생님을 보고 의대에 진학했다고 말을 했었지요. 그리고 마지막회에 환자 중 백선정이라는 여성분이 들어오셨습니다. 가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환자를 보고 나오던 송화는 안치홍에게 백선정이라는 이름을 기억한다며 옛 추억을 꺼내서 말해줍니다. 그걸 듣고있던 윤복은 뒤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교수님이셨구나' 라는 말을 뱉죠. 윤복이 의사가 될 결심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채송화였던 겁니다.

 

그리고 윤복은 서럽게, 귀엽게 울면서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구구절절 이야기를 안해도 송화는 알아채고 이렇게 잘 컸는데 엄마가 하늘에서 좋아하실거라며 울지 말라고 안아줍니다.


사실 더 많은 에피소드들이 기억에 남는데 4가지만 추려서 적어봤습니다.

 

잔잔한 휴머니즘? 같은 거창한 단어말고 사람의 이야기를 밍밍한 맛으로 즐기고 싶다면 한번쯤 찾아서 보시면 좋을거라고 봅니다. 사람이 무엇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늙어간다는게 무엇인지, 내가 누리고 있는 삶이 어떤 색깔인지 생각해보게 만들어줍니다.

 

사족1 : 연애나 로맨스는 신중하게 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주연들 사이에 로맨스가 없어서 좋았습니다. 다뤄지기는 하지만 끈적하지 않고 담담했거든요. 뜨겁지 않고 미지근했고, 극에서 방해가 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도 않았습니다. 전 그래서 좋았어요.

 

만약 시즌2에서 채송화가 누군가와 연결이 되고 연애를 한다면 작가들이 고민을 많이해서 이야기를 만들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미 시즌1에서 우주가 아플때 보여준 채송화와 익준의 모습은 부부의 그것과 흡사했기에 충분히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너무 뜨거우면 주연들의 관계가 깨질 수 있어서 세심하게 다뤄져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사족2 : BGM이 핵심이다.

 

저는 지금도 전미도의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조정석의 아로하를 돈 주고 구매해서 듣고 있습니다. 스트리밍은 체질에 안 맞아서 MP3 파일로 구매해서 듣는데요. 이 외에도 슬의생 시즌1에는 많은 명곡들이 등장합니다. 90년대, 2000년대를 기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노래들이죠. 3040 이라면 추억에 젖게 될 겁니다. 이 드라마의 매력 중 하나죠.

 

사족3 : 동화같은 병원 사람들.

 

솔직히 슬의생은 동화 혹은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등장 인물들 중에서 누구 하나도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캐릭터가 없었습니다. 선악 구도도 아니었고 40대 교수님들은 모두 선량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준완의 캐릭터가 독하게 묘사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40세인 제 눈에는 귀엽던데요? 동화, 그런 느낌이 드는 드라마입니다.

 

아픈 환자가 병원에서 저런 의사를 만나는 것도 복이겠다 싶을만큼의 동화.

 

그래서 한번쯤 권할만한 그런 작품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 아마도? 현실성은 많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굳이 현실과 드라마의 차이점을 찾아서 읽지는 않았어요. 제가 기분 좋고 끝나면 되는 문제인데 굳이 현실을 알 필요는 없는거죠. 

 

도깨비 이후로 가끔 꺼내서 볼만한 작품이 아닐까 싶어서 블로그에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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