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금토드라마 녹두꽃 : 분노보다 계몽에 의의를 두다.

Enter.|2019. 7. 6. 09:50

정현민 작가의 사극은 옳다.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 초반에 의심을 했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본방을 사수할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백이강(조정석), 송자인(한예리)의 러브라인도 단순한 멜로가 아니라 과도기적 시대를 살아가는 남녀를 통해 당시 시대의 가치를 보여줬다. 백이현(윤시윤)을 통해서 당시 식자층이 일본을 지지한 이유를 보여줬고 배우 윤시윤의 개성을 잘 드러냈다.

 

이 작품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중심으로 신분사회를 기반으로 한 왕조국가에서 최소 입헌군주제, 최대 민주사회로 변화를 꾀할 수 있었던 당시 상황을 비교적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이라면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최대 장점은 정치 이야기를 최소화하고 피지배층의 시선에서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표현했다는데 있다. 시기적으로 명성황후, 고종 황제를 중심으로 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으로 뻗어가며 정치적 시선으로 풀어냈다면 아마 나는 시청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미 많이 다뤄졌거든.

 

요즘은 다시보기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서 종영한 작품이라도 볼 수 있으니 꼭 한번은 보기를 바란다. 정현민 작가의 KBS 대하사극 정도전은 SBS 육룡이 나르샤와 같이보면 더 좋고, 녹두꽃도 보면 작가의 시선, 그가 말하고 싶은것에 대해서 알 수 있을거다. 그리고 그것이 일선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이 말하는것보다 더 도움이 될거다.

 

'역사라는건 사건을 암기하는게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제 곧 종영을 앞두고 있는 녹두꽃의 어제 방영분의 스틸컷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끄적이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본다.

 

▲ 1800년대 후반에 고종은 과연 아무것도 몰랐을까? 아니다. 민주주의, 입헌군주제 등에 대해서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종은 왕실을 유지하기 위해서 대한제국을 선포했을 뿐이다. 사실 이 부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힘이 없는 상태에서 그저 몇 년이라도 더 살고 싶어서 선택한 고육지책이었으니까. 당시에 고종이 무엇을 선택했던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것이다.

 

사실 당시에 실제 권력의지를 가진 집단은 명성황후쪽이었다. 다만, 현실감각이 없었을 뿐이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무엇인가를 줘야하고, 힘이 있다면 내 것을 주지않고 빼앗을 수 있다는 현실을 몰랐다. 힘이 없는 사람이 힘이 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몰랐다. 같은 힘을 갖고 있을때 할 수 있는게 부탁인데 당시에 조선의 왕실은 외세에 구걸을 하면서 아무것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어린아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장난치듯이 열강들이 한반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며 농락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면서 전선을 유럽의 국경선에서 유지하고 싶어했기에 대역으로 일본을 내세웠고, 미국은 필리핀 주둔에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일본의 한반도 주둔을 묵인하기로 약속했다. 만약 대한제국이 러시아와 싸울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일본은 청일전쟁 결과를 반환했듯이 열강들의 반발에 부딪혀 한반도에 주둔하지 못했을것이고 대한제국은 영국과 미국, 프랑스 등 열강들에게 약간 손해를 보면서 이 땅을 지켰을 것이다. (러일전쟁은 당시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큰 손해를 보고 전리품인 땅도 다시 돌려준 상태라서 일본이 독자적으로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열강들이 뒤에서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고 전쟁 후 미국이 중재하면서 한반도에서 러시아 세력을 축출할 수 있었다.)

 

※ 당시 청나라는 아편전쟁 이후 세계 열강들에게 약탈에 가까운 수모를 겪고 있었는데 일본이 만주에서 청나라와 싸워서 이기고 그 땅을 차지했다. 즉, 3~4명이 나눠먹던 밥상에 일본이 숟가락을 들고 앉은 것이라 열강들이 모두 다 반발해서 일본은 당시 전리품이었던 땅을 다시 청나라에 돌려주게되고 일본 내에서 '왜 전쟁을 하냐'며 부정적인 여론이 일어났다. 이후 물자를 전부 소진하고 여론마저 부정적인 일본이 러시아를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칫 국내에서 현 집권층이 물갈이가 될 수도 있을 정도로 위기였다.

 

하지만 힘이 전혀 없었고 정세 판단에도 문제가 많았다. 세상이 변하는데 나라 안에서 자국민끼리 싸우기 바빴고 그 결과 식민지 시대를 맞이했다. 그게 광복 이후 지금까지 백년 가까이 되풀이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경제활동을 할 때는 그래도 티가 안났지만 이제 티가 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국민들은 여전히 자국민끼리의 싸움에 선동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이라면 국민들이 세대교체가 되면서 일방적으로 선동당하던 사람들이 두 패로 나뉘어졌다는 것이다. 100년쯤 지나면 더 발전하겠지. 일단 내가 살아있을때 보기는 힘들겠다.

 

▲ 드라마 녹두꽃의 후반에는 양반과 중인, 양인, 천민이 신분이나 계급이 아닌 사람대 사람으로 대면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겠지만 아마 실제로도 일각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을거다. 외세가 개입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왕조국가에서 근대사회로 변화를 했다면 좀 더 좋았겠다라는 작가의 아쉬움이 묻어난다.

 

물론 이미 옛날이야기니까 할 수 있는 아쉬움이다. 동학농민군이 한양까지 진격해서 권력을 장악했다면 일본의 한반도 진입은 막았겠지만 청나라의 자존심은 무너뜨릴 수 없었을거다. 또 일본이 미국과 싸우는 일도 없었을테고 이 땅이 해방되는 일도 없었겠지. (이미 당시에 미국은 조선을 패에서 빼버렸으니까)

 

한번 자녀들과 '동학농민운동이 성공하는게 좋았을까?'라는 주제로 대화를 해보길 바란다. 1894년이었다면 당연히 성공했어야하지만, 2019년의 입장이라면 어떨지 한번 생각해보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것도 좋은 교육이 되지않을까 싶다.

 

▲ 녹두꽃 관련해서 기사에 덧글 중 인상깊었던게 있다. 당시에 누가 조총으로 싸웠냐, 무기는 동등했고 머릿수가 부족해서 졌다는 내용이었다. 대체 어디서 가짜뉴스를 보고 왔는지 모르지만 숨이 턱 막히더라. 아직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너무 잘 속아넘어가는구나. 아마 어그로를 끌어 사람들의 분노를 유도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겠지만 내 눈에는 그냥 벌레로 보였다.

 

'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

 

당시 동학농민운동을 이야기할때 꼭 나오는 말이다. 염색할 돈이 없어서 흰옷을 입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여서 산을 이뤘다는 이야기, 그들의 무기는 죽창이 전부였다는 말을 표현한 것이다. 위에 스틸컷에서 보면 알겠지만 '편안하게 조준사격을 해'라고 말한게 현실을 정확하게 알려준다. 적이 무기를 들고 짖쳐 들어오는데 조준사격을 하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저런 말이 나왔다는건 그만큼 무기 차이가 엄청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금티 전투를 다룬 어제 방송분에서 자본의 눈치를 본 티가 나서 몇 마디만 적는다. 국민 정서를 고려해서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더라. 시청률이 잘 나와야되니 이해한다. 그리고 사실 다른 작품들보다 나은 편이라 칭찬도 한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자.

 

▲ 당시 우금티 전투를 그린 전역도다. 이규태와 두황의 관군이 3천 정도, 일본군이 200명 정도였다. 실제로 자국민을 학살한건 관군이었고 드라마 속에서 나온 회선포를 비롯한 신식 무기들은 모두 관군의 것이었다. 솔직히 고개 위에서 총과 대포로 무장한 군대에게 죽창으로 무장한 농민군이 달려드는건 말이 안되는 전술이었음에도 계속 진행해서 전멸했다.

 

사실상 농민군의 지도부도 전략, 전술에 무지했다. 당시 한반도에는 일본을 비롯한 서구 열강에게 대적할 수 있는 힘이 전혀 없었다는걸 알 수 있다.

 

이 내용을 녹두꽃에서 화면으로 보여주려니 고민이 많았겠지. 자국 군대가 농민군을 학살한걸 그대로 보여주면 누가 보겠나? 불편해서라도 못 본다. 화를 낼 대상이 필요한데 마침 200명의 일본군이 있었으니 드라마에서는 그들을 주로 보여준거다. (사실 일본군은 후방에서 날개만 지키고 있었다.)

 

▲ 사실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의 주인공은 바로 윤시윤이 연기한 백이현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당시 식자층이 일본을 지지했던 이유를 담아냈다는 것이다. 절대로 고칠 수 없는 썩어빠진 나라를 강제로라도 바꾸고 싶었던 지식인들이 전통적인 약탈자인 청나라 대신에 일본을 선택했던것이다. 그들이 가졌던 치명적인 약점은 한민족은 유사 이래로 단 한번도 지배를 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국민을 상대로 한 열강의 행동을 한반도에서도 동일하게 보여줄거라는 착각이 일본을 지지하게 만들었지. 하지만 식민지를 국가로 인정하는 지배자는 없다. 그저 그 땅에 있는 물자(사람, 곡식, 광물 등)를 내가 필요한만큼 빼앗고 피폐해지면 버리면 되는거다.

 

어제 방송에서 백이현이 보여준 모습들은 배울만큼 배운 조선의 지식인이 얼마나 멍청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배울거면 제대로 배워라. 교과서만 읽지말고! 정세 판단은 잘하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지식인이 얼마나 무모하고 한심한지 보여주는 캐릭터가 바로 백이현이 아닐까 싶다.

 

사족

 

이 작품은 우리의 아픈 역사다. 되풀이되면 안되는 역사다. 하지만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땅을 점거하고 물자를 약탈해서 자국을 부강하게 만드는 시대가 아니라서 대다수 피지배층은 체감하지 못할 수 있다. 거기에 한국인의 민족성이 자국민끼리 편가르고 싸우기만 하다보니 부작용도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배는 침몰하고 있고 소수의 기득권층은 침몰하기 전에 타고 도망갈 구명보트에 1원이라도 더 많은 돈을 싣기 위해서 지금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다.

 

동학농민운동, 미래의 주류 세대에게는 먼 옛날이야기겠지만 사실은 2019년 현재의 이야기다. 그대들이 (현재의 10대, 20대 초반) 변화하고 목소리를 제대로 낸다면 내가 살아있을때 나라가 바뀌는 꼴을 볼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물론 필자도 20대 초반부터 생각만했던 '일'을 준비중이다. 능력이 안되고 상황이 안되서 미루고 미루다가 잊어버렸던 그 꿈을 3년 안에 펼칠 생각이다. 미래의 주류가 힘을 올바른 힘을 갖고, 나 같은 삼류 틀딱이 발버둥을 친다면 아마 내 생전에 대한민국이 발언권을 갖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참 드라마 한 편 보면서 별 생각을 다 한다.

 

* 가방끈 짧은 아재라 개인적인 색깔이 강한 글입니다. 잘못된 부분은 덧글로 알려주시면 이 글을 보는 다른 분들께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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