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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후분양 제도는 급한 문제가 아니다.

Think|2019. 10. 24. 13:32

몇 년전부터 아파트 후분양 제도의 도입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최근 부산의 한 신축 건물에서 입주 1년도 되기전에 심각한 곰팡이, 누수 등의 문제로 이 주제가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데요. 적게는 몇 억, 많게는 몇 십억을 주고 구매하는 제품의 특성상 소비자들의 피해가 만만치 않아서 일단 지은 다음에 팔게하는 제도의 도입을 목 놓아 외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소비자의 피해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아파트 후분양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오히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서 시공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유도하는게 더 좋습니다.

 

이에 관련한 필자의 생각을 적어봅니다.

 

 

왜 선분양이 관행이 되었을까?

 

흔히 건설 경기라고 말하는 산업분야는 대한민국에서는 심장 같은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고속도로 건설로 대표되는 경기 부흥책이 있었을 정도로 국가의 경제 활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위치죠.

 

시대가 변해서 IT 분야, 비생산 분야(문화, 컨텐츠, 영상 등)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고해도 종사자 수를 보면 제조업과 건설업이 단연 으뜸입니다. 오히려 IT와 비생산 분야는 성장할수록 부가 특정 집단에 집중되고 현업 종사자는 피폐해지죠.

 

그에 반해서 제조업과 건설쪽은 오너나 특정 집단에 매출이 집중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종사자 대부분이 시장에서 돈을 쓰는 주체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재정이 부족할 때 기업이 돈이 없는 상태에서 건물을 올릴 수 있도록 선분양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언뜻 보면 대기업 밀어주기로 보일 수 있지만 그 덕분에 기술직부터 잡부까지, 시공사인 대기업을 비롯해 하청을 받아 일하는 작은 회사들까지 끊임없이 밀려드는 일거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서울을 비롯해 중소 도시까지 건물과 도로가 정비되는 사업이 붐처럼 일어났고 현재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만들어졌지요.

 

물론 그 이면에는 노동자의 적지않은 희생이 있었고, 부를 독식해 특권 계층으로 자리를 잡는 일부의 집단이 만들어지는데 큰 공을 세운것은 사실이지만 대한민국 경제라는 큰 틀을 보면 공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부가 집중되면서 소수의 사람들이 큰 돈을 만지는 상황과 함께 일선 근로자들의 수입도 안정적으로 늘어나면서 전반적인 국민 생활수준이 상승했으니까요.

 

예전의 권력들이 이 부분을 감안하고 제도를 시행했는지 확인은 못하지만 결과적으로 돈이 없어서 미국에게 버림받고 나중에 그 미국에게 밀가루 얻어먹던 가난한 사람들이 지금 이 정도로 살게 된 이유는 바로 선분양을 선택한 건설업의 흥행 덕분이었습니다.

 

후분양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의와 공정을 기준으로 본다면 건물부터 짓고 구매자를 모집해서 현물을 보여주고 파는게 맞지만 그렇게 될 경우 물량 자체가 대폭 감소하게 될 것입니다. 집으로 재산을 형성하는 대한민국의 특성상 그렇게되면 양극화는 극에 달해서 서울 및 대도시 집값은 폭등할 것입니다.

 

* 이미 집이 많이 있는데 왜 폭등하냐고 묻는 분들이 계시는데 2013년에 중국 바이어를 만났을때 담소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런 말이 나왔습니다. '중국쪽 큰 손들에게 제주도는 이미 시들해졌고 다 서울 번화가에 건물이나 땅을 매입하는데 흥미를 갖고 있다. 이미 거의 다 끝난걸로 알고 있다. ' 집은 많죠. 근데 실사용자가 구매한 집은 거의 없는게 현실입니다.

 

집값은 폭등하는데 건축 경기가 위축되면서 투자도, 건설 물량도 줄어들게되면 단순히 공사장이 줄어들어 일용직 근로자의 일거리가 줄어드는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건설과 관련된 유관 산업들 (페인트, 도배, 장판, 인테리어, 가구, 청소, 새집증후군, 방충망, 화재경보기, 배관, 전기 등) 모두 일이 없어서 힘들어지게 됩니다.

 

이 유관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까지 모두 합치면 과연 그 여파는 어느 정도가 될까요? 거기에 집값이 폭등하며 일부 대도시로 부가 집중되면 기업, 일자리도 모두 집중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근로자도 따라가야죠. 땅값, 집값 모두 평생 일해도 못 가질 것들인데 거기로 가서 일해야 목숨이라도 연명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피해자 보호 목적에는 부합하겠지만 보호해야 할 피해자가 없어지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고 나라를 박살내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소비자 피해 구제 및 예방은 어떻게 해야되나?

 

평생 갚아야하는 큰 돈을 내고 집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후분양은 최후의 선택입니다. 극단적인거죠.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는 정상 국가라는 가정을 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시공사에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하는것입니다. 문제가 발생한 부분을 작업한 회사가 1 하청, 2 하청이든 관계없이 자신들이 업체를 선택해서 일거리를 줬으면 그 책임도 시공사에서 우선 지는거죠. 우선 피해자에게 보상하고 나중에 개별적으로 구상권을 청구하도록 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파트는 지어진 뒤에는 불량 여부를 한 눈에 알 수 있어서 소비자와 시공사 사이에 시시비비를 가릴 건더기가 없습니다. 지은지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비가 많이 왔다고 물이 벽에 스며들어서 벽지 뒤로 곰팡이가 피었다면 100% 건물을 지은 사람의 잘못인거죠.

 

그러므로 소송은 불가능하게 만들고 디테일한 항목별로 주택 판매 가격에 몇 %씩 보상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그 책임을 강화하는게 좋습니다.

 

* 기업과 개인간 소송은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해서 존재하는게 아니라 기업의 시간끌기 입니다. 1억을 오늘 주는것보다 3년 뒤에 주는게 더 이익이니까요. 그래서 하자 문제 만큼은 결과물만 보고 배상을 하도록 강제해야 됩니다.

 

이렇게 시공사(대기업)의  책임이 강화되고 문제가 발생했을때 어떻게 처리했느냐로 기업 평가를 한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소비자의 권리가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법과 제도만 제대로 작동해도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으며, 기업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좀 더 전문적인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하게 되겠죠.

 

그리고 문제가 발생한 것에 대해서 평가를 하는게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느냐로 기업을 평가하고 공공부문 입찰경쟁, 인허가 부분에서 그 점수를 반영한다면 근로자와 소비자 모두 법과 제도, 국가의 틀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을겁니다. (국민을 노예로 취급하는 기업이 건물을 짓고 공공부문 입찰에 선정되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 그럼 적어도 사고가 났다고 다친 사람을 죄인 취급하지 않을겁니다. 오히려 잘 관리해서 다시 사업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회사가 나서서 노력하겠죠.

 

사족

 

아파트 후분양 정책은 언뜻 보기에는 여론의 힘을 등에 엎을 수 있는 좋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총선 전에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꺼낼 카드로 적격이죠. 하지만 그것은 나라를 무너뜨리는 최악의 한 수가 될 것입니다. 선택에 신중했으면 좋겠습니다.

 

건물을 지은 뒤에 파는 방법보다 시공사의 책임을 강화함으로써 소비자를 보호하는게 전체를 위해서 더 나아서 이 이야기를 적었을 뿐, 한국에서 이루어질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모두 다 죽는 방법보다 일부라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었을 뿐입니다.

 

정의와 공정에 위배된다고해서 무조건 뜯어고치려고 한다면 차라리 칼을 드는게 더 낫습니다. 그럼 절반은 잘 살테니까요. 지은 뒤에 파는걸로 제도를 바꾸는건 대부분 다 같이 못 살자고 꺼내드는 패라는걸 말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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