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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 추억, 17년만에 본 명작

Movie|2019. 7. 1. 14:54

2003년이면 필자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하기 전 게임에 빠져서 폐인처럼 살았을때다. 그래서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본 기억이 없다. 명작이다. 걸작이다. 최고다. 말은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정신차리고 본 것은 어제였다.

 

워낙 많은 매체에서 두고두고 보여줬고, 해석에 설명에 기념회까지 할 정도로 소란스러웠기에 본 적이 없어도 대충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그러다 배우 전미선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 작품을 구해서 보게됐다. 1080P로 봤는데 결론은 간단하다.

 

화질만 문제가 없다면 지금 개봉해도 시장을 평정할만한 작품이다.

 

촌스러운게 없고, 부족한게 없다. 캐릭터는 분노했지만 이야기는 뜨겁지 않았고, 관객은 다 알고있는 그 범인을 단죄할 수 없는 이야기 속 두 형사에게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영화를 보는 재미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영상이 아닐까? 싶다.

 

▲ 살인의 추억은 1986년에 있었던 화성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을 다뤘다고 한다. 그 당시에 열악한 수사 환경과 기술력 부족, 시골의 치안 수준 등으로 인해서 범인을 잡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을 담고있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담아냈다.

 

▲ 이 작품에서는 유독 젊은 여성들의 시신을 많이 보게되는데 요즘같은 분위기라면 불매운동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1986년이면 국민이 아니라 군부와 그들의 지배를 받는 피지배층이 한반도 남쪽에 거주하던 시기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도 되던 시대이고 그 소가 사람의 목숨이어도 상관없던 시절이다.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근로자의 목숨은 마땅히 희생되어야 하던 시절이다.

 

그래서 소재만 실화에서 가져왔을 뿐 디테일이나 구성은 모두 픽션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작품의 내용이 사실에 가깝다면 그건 경찰이 범인을 알면서 잡지 않았다는 말이거든. (솔직히 당시 분위기로 봤을때 윗분들의 심기가 불편해지기 전에 종결하겠다고 죄가 없는 사람 중에서 뒷배가 없고 반항할 힘이 없으면 잡아다가 죄인으로 만들었겠지)

 

아마 실제로는 범인의 윤곽조차 잡지 못했을거라고 생각된다.

 

▲ 일명 향숙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었던 백광호 캐릭터는 소모품이 아니었다. 범행현장을 목격했으면서 범인에게 노출되지 않은 유일한 목격자였다. 그 설정까지 이르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고 재미있었다.

 

영화를 보는게 재미있는 일이라는걸 느꼈을 정도로 흔하지 않은 연출이었다. 살면서 보는 영화 중 이런걸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몇 개나 될까? 아마 한 손가락으로 꼽을거다.

 

▲ 이야기 속에는 다양한 설정을 통해서 수상하다는 이유로 끌려와 조사실에 감금당하고 원하는 자백을 하지 않는다고 맞고, 거꾸로 매달려 가혹행위를 당하던 용의자들을 보여준다. 작품 속 두 형사(김뢰하, 송강호)가 유별났던게 아니라 그게 당연한 수사 과정이었는데 사실 난 이 부분도 높게 평가한다.

 

보통 사람들은 겉으로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강력범죄 피의자에 대해서는 지나칠정도로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 '맞아도 싸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 속에서 보여진 장면을 보면서 경찰이 나쁘다고 생각한 사람이 몇 명일까? 별로 없을거다. 왜? 감독이 그렇게 보이도록 연출을 했다. 피해자의 가족들도 그렇게 그려졌고 정작 폭행, 감금, 협박을 당하는 시민들도 순응하는 모습으로 그려졌기에 가능한 설정이다.

 

만약 이 부분이 요즘의 방식으로 그려졌다면 (누가누가 더 나쁜 놈일까? 경쟁하듯 연출되는 방식) 아마 지금처럼 평가가 좋지는 못할거다. 관객의 관심이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이야기의 중심에서 벗어날테니까.

 

이런 부분은 감독이 인간의 이기심을 이용해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부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감정선을 잘 컨트롤했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똑똑하다.

 

▲ 유력한 용의자였던 박해일은 반장이 바뀌면서 폭력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게된다. 덕분에 박해일은 '증거있어? 없잖아' 라는 태도를 보이며 극의 긴장감을 더 끌어올린다. 그래서 이 작품을 박해일이 중심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많다. 

 

▲ 하지만 영화 살인의 추억의 주인공은 송강호와 김상경이다. 특히 수사를 하는 스타일이 정반대인 두 사람이 서로에게 동화되어가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비 오는 날 터널 앞에서 벌어졌던 후반부는 너무 좋았다.

 

▲ 그리고 엔딩 장면이 좀 특이했는데 나중에 봉준호 감독이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실제 사건에서 범인을 잡지 못했다.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조사를 하면서 범인이 과시적인 성향을 가졌을거라고 생각해서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다룬 살인의 추억을 분명히 보러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송강호의 시선이 마지막에 관객을 향하도록 했다. 범인과 눈이 마주치기를 바라면서...'

 

결론

 

사실 난 작품성, 개연성, 미장센 같은 전문적인 내용은 잘 모른다. 다만 재미있는가? 재미없는가?와 누구와 같이 볼 수 있는가?만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재미있었다. 2003년에 봤어도, 2019년에 봤어도 스킵을 할 수가 없더라. 지루할 틈이 단 1초도 없었다는게 맞는 표현같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왜 우리나라 영화는 철 지난 예전 작품들이 더 재미있을까? 난 그 이유를 감독들의 매너리즘에 있다고 본다. 배우들이 아무리 연기를 잘 해봐야 남의 돈(투자금)으로 먹고 사는 주제에 예술하겠다고 깝치는 감독들이 많아서 참 어려워졌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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