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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 감상 후기 : 가짜 명품

Movie|2020. 8. 14. 12:06

최근 필자의 일상에 태풍이 불어서 평소 즐기던 영화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서서히 정리가 되면서 다시 예전에 받아둔 것들부터 하나씩 보고 있는데요. 오늘은 2020년 1월에 개봉했던 영화 남산의 부장들 시청 후 남기는 후기를 올려봅니다.

 

일단 이 작품은 정치적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고 육군본부에서 체포되어 사형당하는 이야기거든요. 아직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이해 관계로 얽힌 사람들이 생존해 있는, 당사자들이 아직 힘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다루기 힘든 현대사를 다루었습니다.

 

덕분에 내용과 관계없이 특정 집단의 입장을 대변하는 수 많은 공작이 펼쳐졌었네요.

 

 

▲ 모 블로거가 영화 남산의 부장들 후기를 남기면서 진보와 보수 성향 커뮤니티의 반응도 올렸는데요. 인터넷 여론을 뒤집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에 탄식을 뱉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후기를 적는 이유

 

해당 작품의 평가 중 어떤 분이 '그 때는 국회보다 대통령이 힘이 더 강했나봐요.' 라는 글을 올렸더군요. 아 어떤 세대에게는 이 내용이 전혀 와 닿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적게 되었습니다.

 

* 개인적으로 가십을 다루는 채널에 달렸던 '다른 유튜브에서는 다루지 않는 내용인데 이게 정말 사실인가요?' 라는 덧글 이후에 충격적인 덧글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 답부터 드리죠.

 

만약 A라는 사람이 인터넷 덧글로 '문통 나쁜놈' 이라고 적으면 그 날 저녁 때 그 집으로 괴한들이 들이닥쳐서 A를 잡아갑니다. 그 뒤 일단 고문하고 조상들을 싹 다 조사해서 티끌이라도 나오면 공산당이라고 낙인을 찍어 참합니다. 그리고 그 가족들이 계손 부당하다고 호소를 하면 그 가족들까지 묻어버립니다.

 

국회의원이요? 애초에 대한민국의 국회는 거수기 역할을 하기 위해서 뽑아놓은 대표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당에 있는 의자가 그리 푹신하고 안락한 것입니다. 편하게 쉬다가 손만 들라고 제공된 것이죠.

 

이 땅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통 시절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실책이 있는 것은 분명하고 그로 인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억압과 공포에 떨어야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의 결단으로 인해서 우리나라는 2차 대전 패배로 빈사 상태로 죽어가던 일본을 살려준 빈민 전쟁 국가에서 벗어나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밀가루를 원조 받으며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 공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영화 이야기

 

필자는 개인적으로 김재규가 박통을 암살하는 과정이 상당히 허술해서 치밀하게 짜여진 계획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대의를 내세운 혁명도 아니었고 희생도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1979년까지 제대로 된 전략을 써서 정권을 탈취한 경우는 없습니다. 그냥 가서 먹은거죠.

 

솔직히 저는 이 문제를 미국의 도구였지만 그들과 별개로 정치 싸움에서 패배한 김재규의 순진한 발악이었다고 봅니다. 미국에서 쓰기도 전에 자기가 혼자 자연발화를 한거죠. 그리고 이 작품은 그 이야기를 아주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작품은 다루기 힘든 현대사를 담고 있기에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다 변경되어 있습니다. 아직 살아있는 당사자들도 많으니까요.

 

관객으로서 적는 작품 이야기

 

▲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주인공인 중앙정보부장 김규평 역의 이병헌입니다. 믿고 보는 배우죠. 나이가 들수록, 내공이 쌓일수록 점점 더 신뢰가 쌓이는 배우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날카롭고 냉철한 이미지보다는 다소 순진한 권력자로 나옵니다. 처음에는 왜 저리 찌질한 역할을 맡았을까? 머리 모양은 왜 저런건가? 눈에 거슬렸는데 다 보고 난 후에는 김재규 미화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던 캐릭터입니다.

 

마지막에 나온 김재규의 최후 진술 육성을 들으면서 '정말 순진했구나' 라는 생각도 했지요.

 

암살에 성공하면 세상이 바뀌어서 자신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했다. 결단을 내렸다고 하면 영웅으로 대접받을 줄 알았던것 같더군요. 그 당시의 대한민국은 아직 그럴 준비가 된 상태가 아니었는데요. 차지철에게 밀려서 권총을 빼 들게 된 상황까지 몰린 이유도 알 것 같았습니다.

 

김재규를 미화했다?

 

대체 어디를 봐서 미화한거죠? '다음은 네가 해야지?' 라는 한 마디에 친구를 묻고 데보라 심을 버렸죠. 헬기에 같이 못 타면서 위기감이 극에 달해서 급조된 계획으로 통을 쏘고 육본에 자기 발로 들어가서 잡혔죠? 그 뒤는? 전씨가 다 먹었죠. 미국도 다음 대안이 전씨는 아니었을텐데 똥 밟은거고 대한민국도 똥 밟는데 김씨가 제대로 역활을 했죠. 뭘 미화해요. 세상에 다시 없을 바보 멍청이로 그렸구만.

 

▲ 박통 연기를 한 배우 이성민씨입니다. 정말 연기 잘 하시죠. 이 작품을 보면서도 '왜 저래?' 싶을 정도로 현실적인 모습이어서 눈살이 찌푸려지면서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실제 그의 행적 (만주군관학교 -> 일본육사 -> 대한민국육사 -> 군인 -> 대통령 -> 서거)을 미루어 볼 때 제가 본 어느 표현보다 제일 현실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그 따위 놈한테 관심이나 있데? 배신자인데. 그냥 내 돈이나 찾아서 가져와'

 

다들 임자~로 시작하는 그 대사를 기억하겠지만 저는 후반에 김부장에게 돈 가져오라고 할 때의 그 연기가 더 기억에 많이 남네요. 젊었을때부터 계속 현실적인 선택을 하면서 출세를 향해 달렸던 그의 끝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고 봅니다.

 

* 처음에는 힘으로 권력을 잡아도 결국 유지하는데에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죠. 세상에 어떤 사람이 자기 주둥이에 현찰 다발을 밀어 넣어주지 않는데 계속 절대 충성을 할까요? 결국 모든 욕망의 끝은 돈으로 귀결되지요.

 

▲ 김규평이 총을 빼들도록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아넣은 경호실장 곽상천 역의 배우 이희준 입니다. 전 예전부터 연기 잘 하는건 알고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자기 이미지와 잘 맞는 캐릭터까지 입어서 더 주목을 받는것 같네요.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김부장과 박통에 집중되어 진행되다보니 다소 그 존재감이 아쉬웠습니다.

 

아까웠던 캐릭터들

 

▲ 극에서 중앙정보부장에서 해고되고 국회의원직도 상실하면서 대만 출국 후 미국으로 건너가 코리아 게이트를 터트리는 박용각 역의 곽도원씨입니다.

 

▲ 로비스트 데보라 심 역할이었던 배우 김소진씨입니다. 

 

박용각, 데보라 심 두 캐릭터는 너무 아까웠습니다. 전개를 위해서 잠깐 나와서 소모되기에는 너무 아까운 연기력들이죠. 물론 두 사람은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미국이 관련자로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할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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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작품을 다 감상했을때 이야기의 시작점이 꼭 박용각이었어야 했을까?라는 의구심은 들었습니다. 초점이 맞춰진 후반의 이야기와 궤가 좀 다르지요. 결국 시작 지점이 중반까지 차지하는 분량 덕분에 내용은 다소 헐거워졌고 급하게 마무리가 된 느낌이 들더군요. 평 중에 잘 만들었다는 칭찬이 많던데 솔직히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를 아주 담백하게 잘 담아냈을 뿐이죠.

 

* 갈등을 디테일하게 그려내기에는 부담이 컸겠죠. 저 배우들이었다면 충분히 명작을 만들 수 있었을텐데 아직은 시기 상조라 어려웠을 것입니다. 박용각과 데보라 심이 빠지고 그 자리를 곽성철, 김규평, 박통으로 채우고 사건을 부마사태에 집중시키면 픽션의 비중이 더 커지면서 훨씬 더 볼 만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을 남겨봅니다.

 

개인적인 평점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 대한 제 평점은 8점입니다. 봐줄만하지만 수작이라고 할 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닙니다. 여러 장면들이 기억에 남지만 결국 김규평의 밑바닥을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장면들이라 언급 할 가치는 없네요.

 

중반까지의 시간을 채웠던 수 많은 장면들, 장치들, 대사들이 오로지 김규평이 내렸던 단 한번의 선택을 끌어내기 위한 소모품이었다는 사실. 그 선택과 클라이막스 사이가 너무 멀고 영향력도 크지 않았던 것이 아쉬움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그렇게 쓰여지기에는 클라이막스가 그만큼 치밀하고 디테일하지 못했거든요. (배우의 연기는 디테일의 극을 달렸는데 스토리가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재미있게 봤지만 이야기 자체가 대중적으로 재미를 느낄만한 소재가 아니라서 지루함을 느낀 관객도 엄청나게 많았을텐데 좌, 우로 나뉘어서 덧글 작업을 치기 바빠서 실제 관객들의 솔직한 평가는 묻힌 것 같아서 아쉬울 뿐이네요.

 

* 제가 이야기 자체에 흥미가 없었다면 6점이나 7점을 줬겠죠.

 

사족

 

과연 이 땅에서는 언제쯤 좌, 우의 이해관계가 문화 컨텐츠인 영화의 평점을 조작하지 않을만큼 성숙해질까요? 또,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한다고, 자기 생각과 일치한다고, 자신이 처한 입장에 도움이 된다고 무조건 10점만 주는 관객들부터 더 성장해야겠죠. 기업들이 유튜버한테 돈 주고 뒷광고 하는건 입에 거품을 물고 욕하면서 자기들이 검색결과 조작하는건 왜 가만히 있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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