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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랏말싸미 실제 관람후기 : 감독이 말아먹은 절밥

Movie|2019. 7. 24. 13:51

우리나라에 건드리지 말아야 될 두 명의 인물이 있다. 바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다. 이 둘은 전대미문, 세계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한국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는 그 신성 영역을 침범하는 내용으로 제작되었다. 하필이면 세종대왕의 최대 업적인 '한글창제'를 '신미창제설'과 접목시킨 것이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이 보고 나왔을때는 엄청 지루할뻔했는데 그래도 덜 지루하게 만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와서 네티즌 평점을 확인하니 역사왜곡 논란으로 인해서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워낙 위대한 영웅의 대표 업적이 다루어지다보니 불매운동까지 확산되어도 이상할게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역사왜곡으로 몰아붙이지 않아도 흥행은 힘들거라고 생각했다. 내용 자체가 재미를 기대할 수 없어서 평소에 좋아하는 장르와 주제였음에도 평점을 7점밖에 못 주겠다 싶었거든.

 

▲ 1회차 상영 실제 관람객 인증샷으로 런닝타임이 엄청 지루해서 짜증나지는 않았으나 과연 이 더운 여름에 한글창제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게 다가갈까? 의구심은 들었다.

 

필자의 경우 kbs 사극 '대왕세종'을 좋아했던 일반인이라서 그나마 편하게 본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떨까? 대사들, 상황들이 이해가 안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된다.

 

※ 참고로 역사왜곡 논란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대왕세종', '뿌리깊은나무'를 보면 영화 나랏말싸미를 좀 더 편하게 관람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픽션이고 왜곡 논란이 강해서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드라마지만 상황을 연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도 역사는 문외한이라 영화에서 '갈등의 이면', '백성을 통해 퍼져나가 가슴 속 깊이 뿌리박힌게 지금까지 이어져온 한글이라는 점', '조선의 왕 세종의 인간적인 고민과 고충'을 봤는데 평점에서 피어난 역사왜곡 논란을 보고 갑자기 궁금증이 들어서 물어보겠습니다.

 

개인적인 궁금증

 

1. 신미창제설의 핵심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전에 신미대사가 이미 만들었고 그 문자를 가지고 원각선종석보를 출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원각선종석보의 출간 시점이 훈민정음 반포 이후라고 밝혀지면서 거짓으로 판명이 났다.

 

2. 조선왕조실록에 문종이 대신들을 불러 세종대왕이 1446년에서야 신미를 알게된 후 우대하였으니 그에게 관직을 내리는 문제를 논의하라고 했다. 

 

질문입니다.

 

분명 신미창제설은 거짓입니다. 요즘은 과학적으로 고서의 생성 시점을 추적할 수 있잖아요? 그 시점이 훈민정음 반포 이후라서 이 가설을 진짜라고 우기는건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실록에 하필 훈민정음 반포 이후를 콕 집어서 신미를 등장시킵니다. 그리고 그에게 관직을 제수하기를 원하는 왕의 말이 적혀있습니다.

 

제가 아는 역사는 기록이 적힌 배경을 추측해서 퍼즐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편적인 사실보다 상황의 흐름을 이해하는게 더 중요합니다. 그럼 추측해봅시다.

 

아시다시피 문종, 세조는 모두 세종대왕의 직계입니다. 이 두 사람이 과연 아버지의 한글창제 기록을 바꿀 수 있었을까요? 그런 이유로 실록에 남아있게된 한글은 아직까지 이어질 수 있는 명분을 가질 수 있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 신미라는 승려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실록에 기록할 수 있었을까요? 고려 왕실을 지지하던 불교를 사찰과 구성원의 부패를 이유로 제거한 군부가 새로운 질서인 유교를 불교 자리에 놓고 세운 조선, 그 나라가 창업한지 50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승려가 개입해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다? 사실이었어도 절대로 실록에 적을 수 없는 말입니다.

 

또한 승려 하나가 독단으로 만든 문자라면 아마 그 시점에 이 땅에 불교는 사라지고 관련된 사람은 멸족됐겠죠. 그런데 실록에 신미가 등장하고 관직을 제수하는 논의를 하라는 왕명이 내려집니다. 말이 안되죠.

 

그렇다면 세종의 한글창제에 신미가 관련이 있을 것이다라고 의심을 할 수 있는것이 아닐까요?

 

영화 나랏말싸미가 욕을 먹어야하는 이유

 

왕조국가, 그것도 창업한지 50년 밖에 안되어 행정력이 충청도까지 미치지도 못했던 신생국가에서 세종의 확고한 의지와 전폭적인 지원이 없다면 문자는 절대로 만들 수 없습니다. 비록 신미가 그 과정에 참여했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하더라도 그 업적은 당대의 군왕이 갖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세종을 신미의 뒤에 세우고 그가 만들어준걸 세상에 내놓은 인물로 그려버립니다. 그 동안의 노력을 모두 헛수고로 돌리고 자기가 다 하는 모양새로 그려내죠.

 

욕을 한다면 이 부분을 이유로 들어야됩니다.

 

제가 아무리봐도 이 작품은 신미창제설을 다룬게 아니라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를 다룬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번 왜곡 논란은 세종과 신미의 비중이 뒤바뀌면서 국민들이 화를 내는 차원에서 불거진게 아닌가 싶네요.

 

* 아~ 그래서 어떤 평론가가 주객전도라는 평을 썼나?

 

어쨌든 스틸컷들로 간략히 영화 나랏말싸미에 대해서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보겠습니다.

 

▲ 포스터는 세종대왕이 중심인데 왜 이야기는 신미가 중심인 것처럼 보였을까? 정말 감독의 인터뷰처럼 불교의 위상을 알리기 위해서 이 작품을 만들었나? 감독은 좀 주둥이 좀 조심했으면 좋겠다.

 

* 한글, 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문자,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모두 적을 수 있는 유일한 문자. 이걸 힘 있는 천재 혼자서 만들수는 없다. 그리고 그걸 모두가 쓰도록 하는 일도 힘들다. 세상이 원래 그러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글로 그걸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것이 내가 이 영화에서 찾았던 이야기입니다. (왜곡 논란은 상상도 못했다.)

 

▲ 사극 치고는 처음부터 볼만했다. 털털한 왕은 아마 뿌리깊은 나무의 한석규가 시초인것 같다. 왕이라고 꼭 근엄해야되나? 라는 반문이 더 현실적이라 반가웠던 초반이었다.

 

▲ 세종과 소헌왕후의 모습, 재미를 담기가 어려운 주제였는데 술 한잔을 드는것도 눈치를 보는 대왕의 모습에 살짝 미소지을 수 있었다.

 

▲ 조선은 이미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고 있으니 귀국의 팔만대장경은 쓰레기나 다름없지 않냐며 자국에게 내어달라고 떼를 쓰는 일본의 사신들을 팩폭으로 짖이겨버리는 신미와 학조.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10년이 걸리든, 100년이 걸리든 직접 만들어라. 직접 만들지 않으면 나무쪼가리에 불과하다.'

 

▲ 소헌왕후 역의 故 전미선님, 극에서는 일을 진행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것으로 나옵니다.

 

▲ 궁녀이자 백성의 대표로 표현된 상궁 이진아로 나온 금새록님, 독전때부터 기억에 남던 배우라 눈에 많이 띄었네요. 영화를 볼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백성으로 나온것 같습니다. 먼저 배우고, 익히고, 퍼트리는 백성.

 

▲ 이 장면은 욕을 먹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어떻게 셋이 같은 상을 받나? 신미 캐릭터가 꼴통이고 왕이 인자하다는 설정을 최대한 고려해서 평소 무례한 언사를 내뱉는 모습까지는 참으 수 있다. 그런데 이건 아니지않나?

 

▲ 기록으로 남고 문서로 박제되기 전에 이미 소헌왕후는 궁녀들에게 언문을 배우게하고 그 가족, 지인들에게 퍼트리게 한다. 만들기는 왕이 했으나 퍼트리기는 백성이 한 문자 '한글'을 보여준 대목이다. 물론 신미와 세종 중심이라 이 부분이 매우 간략하게 다뤄진것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상궁 이진아(금새록)와 승려 학조가 썸인지 장난인지를 하면서 자음을 적어대는 상황으로 어느정도 대신했지만 보는 사람이 얼마나 그걸 느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개인적인 결론

 

솔직히 영화 나랏말싸미만 보고 나왔을때는 실제 관람후기를 적을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아니 역사왜곡 논란도 내게는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다. 난 다른 이야기를 봤으니까. 주객이 전도되어 아쉽다는 생각도 참을만하다. 그런데 딱 하나가 걸린다.

 

바로 불교방송에서 감독이 했다는 인터뷰 내용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아서 긴 말을 적을수는 없지만 그 부분이 제일 걸린다. 그렇다고 재미가 넘치는 작품도 아니고, 세종과 신미의 비중 조절이 잘못되어 꼭 볼만한 작품도 아니다. 그래서 평점을 7점을 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주제, 좋아하는 배우, 장르였고 약간 지루함을 느꼈지만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감독이 불교의 위상을 담기 위해서 신미를 세종대왕보다 앞세운 한글창제 이야기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 이 작품이 망한다면 감독의 주둥이를 탓해라.

 

이 감독은 결국 자신이 추켜세우려던 불교를 무자비하고 무분별한 사이비 종교로 만들어버렸네? 투자자들의 돈을 받아서 최고급 재료를 가지고 절밥을 지어버렸구나. 양심이 없는 진리가 과연 사이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

 

사족

 

원래 감독과 역사왜곡 문제가 아니었다면 '난 해인사에 가 본 적이 없다.'와 '우리나라 전통가옥이 잘 유지됐다면 아시아의 피렌체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담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쓸데없는 잡담만 가득 적어본다.

 

차라리 다른 사람들의 평을 찾아서 읽지 말았어야했다. 감독의 인터뷰 내용, 왜곡 논란이 신경쓰인다. 그래도 평점 7점은 내 소신이다. '제작진과 스태프들, 배우들 수고하셨습니다.'

 

이거 흥행할 수 있을까? 논란을 다 빼고 작품 자체만보면 약간 지루하지만 괜찮았는데 아쉽다.

 

그래도 내가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한다면 이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을거다. 지루해서 보고 난 뒤에 분위기가 엄청 냉랭할거같거든.

 

※ 왜 요즘 한국 작품들 중에는 '그냥 재밌어'라는 평이 나오는게 없을까?

 

작품 외 문제가 너무 많아서 평을 정리하기가 너무 힘들다. 이런 작품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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